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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물론5

物無非彼,物無非是。自彼則不見,自知則知之。

 

故曰:彼出於是,是亦因彼。彼是,方生之說也。

 

雖然,方生方死,方死方生;方可方不可,方不可方可;因是因非,因非因是。

 

是以聖人不由,而照之於天,亦因是也。

 

是亦彼也,彼亦是也。彼亦一是非,此亦一是非。

 

果且有彼是乎哉?果且無彼是乎哉?

 

彼是莫得其偶,謂之道樞。樞始得其環中,以應無窮。

 

是亦一無窮,非亦一無窮也。

 

故曰“莫若以明”。

 

 

 

만물이 악이 아닌 것이 없고, 만물이 선이 아닌 것이 없다.

악의 입장에서는 선이 보이지가 않고, 선의 입장에서만 스스로가 선한 것으로 알

게 된다.

고로 말하기를 악은 선이라는 개념이 있어 나온 것이요, 선 또한 악이라는 개념

이 있어 나온 것이다. 고로 선악이란 너와 나를 구별하는 단지 상대적인 개념일

뿐으로 따라서 동시에 생긴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악이란 상대적인 것으로 같이 생겨나 같이 소멸하고; 같이 소멸하고

같이 생겨나며; 동시에 구별이 가능하다가 또한 동시에 구별이 불가능해지며; 동

시에 구별이 불가능하였다, 동시에 구별이 가능해진다. 선이 있어 악도 있고, 악

이 있어 선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들은 이와 같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세상을 보지를 않는다. 오로지 하

늘의 입장에서 관조할 분이다. 이 또한 앞에서 말한 이유 때문인 것이다.

 

선 또한 악이라 할 수 있고, 악 또한 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선이 없다면 악

또한 없는 것이다.

 

과연 선악은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과연 선악이란 없는 것인가?

 

선악의 구별이 없는 경계, 이것이 바로 도의 관건인 것이다.

 

선악이라는 악순환의 연결고리에서 이 관건을 얻게 되면, 그 끝없는 악순환을 끝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선 또한 끝이 없고, 마찬가지로 악 또한 끝이 없는 것이다.

 

고로 앞에서 말한 것이다. 스스로 자명하도록 관조할 뿐이다.

 

 

 

 

 

【감 상】

 

원래의 본문은 너와 나로 해석하는 것이 직역에 가까운 뜻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본문의 정확한 의도가 잘 들어나지 않을 것 같아 선과 악으로 바꾸었습니다.

 

나와 너, 선과 악, 이쁨과 추함, 잘남과 못남

 

이 모든 것이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상대성의 개념으로는 이 세상이 영원한 투쟁과 지옥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악순환의 고리가 영원히, 그 투쟁이, 그 욕망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쉬고,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상대성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칼 만하임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 말합니다.

 

인간에게는 영원히 유토피아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꿈을 이루고 나면 또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히 인간은 유토피아를 이룰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상대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한 인간은 영원히 그 상대성의 개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칼 만하임이 아주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지요.

 

 

 

왜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에서 인류가 선악과로부터 시작을 하였는지 이해가 됩니까?

 

선악 즉 너와 나라는 구별과 대립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낙원이었던 그곳이 사바세계로 바뀐 것이지요.

 

영원한 투쟁과 고통의 시작인 것이지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물리적 시공간적으로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공간 동일한 시간에서 단지 세상을 보는 마음이 선악이 없는 마음에서

 

선악으로 갈라진 분별의 마음으로 보는 순간 이미 그곳이

 

이 사바세계로 바뀐 것뿐입니다.

 

 

 

성경에는 그 즉시 하나님이 영생나무의 과일을 먹지 못하게 하였다고 되어 있지요.

 

만약 이 고통의 사바세계, 분별의 마음, 상대성의 마음을 지닌 채

 

영원히 산다고 해 보십시오.

 

그것은 저주입니다.

 

영원한 투쟁의 세계를 영원히 살아간다고 한다면,

 

아! 이 보다 더한 저주와 지옥이 있을 수 있나요?

 

 

 

사실은 하나님이 영생나무 과일을 못 먹게 한 것이 아닙니다.

 

선악이라는 상대성의 마음으로는 영원한 안식이 없어

 

낙원이 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었듯이

 

낙원이란 지금 바로 이곳에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상대성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세속에서 말하는 대로 헌금 잘하고, 주일 잘 지키고, 전도 잘하고,

 

세속의 교회를 끔찍이 섬기고, 주의 종을 끔찍이 섬기고,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살다가 세속에서 말하는 천국에 갔다고 하지요.

 

그랬더니 집도 엄청 좋고, 아이들도 건강하고 영원히 살고, 모든 것이 훌륭하였습니다.

 

너무 너무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정말 환상의 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을 보았더니

 

옆집이 우리 집보다 크고, 옆집 아이가 우리 애보다 공부 잘하고 더 잘생기고,

 

이렇게 비교를 하니 끝이 없었습니다.

 

이 영원한 상대적 비교에서 박탈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면 천국입니까?

 

그럼 천국은 어찌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할 수 없이

 

모든 집의 색깔을 똑같이, 집 크기도 똑같이, 생김새도 똑같이, 아이 수도 똑같이,

 

목소리도 똑같이, 능력도 똑같이, 심지어 마음까지, 능력까지

 

모든 것이 똑같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예수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준비한 천국입니다.

 

 

 

 

 

 

 

에덴동산에 낙원에 다시 들어가는 길은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상대성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시작인 구약, 그 구약에서 맨 처음 최초 인류의 시작인 창세기에서

 

선악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선악과 이전에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을 몰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동물과 같은 수준이었다는 것이지요.

 

그 동물과 같은 수준을 선악과를 먹이여 분별의 지혜를 갖춘 현재 인류가 나온 것이지요.

 

비록 이곳이 영원한 선과 악의 투쟁이요, 고통의 세계라 할지라도

 

저는 동물과 같은 수준으로 낙원에서 영생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는 말합니다.

 

나를 버리라고 그리고 십자가를 지라고.

 

이 뜻은 나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십자가의 고행길을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버리라는 것은

 

너와 나의 구별, 선과 악의 구별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나를 버렸는데 너가 어디 있고, 선과 악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십자가는 저절로 지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란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공적인 생활

 

즉 자기의 본성, 본래의 나, 불성, 그리스도 성을 따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공의 세계 즉 분별이 없는 세계에서 나와

 

분별 있는 지금 이곳의 사바세계로

 

분별 있는 지금 이곳의 사바세계에서 다시 분별없는 공의 세계로 가는 것.

 

이것이 바로 공의 세계에서 사바세계로 다시 공의 세계로 가는 것으로

 

앞의 공과 뒤의 공이 다른 것입니다.

 

앞의 공은 앞에서 말한 아담과 이부의 아무것도 모르는 공이요

 

뒤의 공은 모든 분별의식을 버린 공의 세계입니다.

 

 

 

노자가 無爲의 爲, 즉 내가 없는 삶.

 

완전히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절묘한 성경의 참 뜻이 완전히 왜곡되어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선악을 넘어가라는 창세기 본래의 뜻을 왜곡하여

 

선악을 구별하여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는 대립의 구도로

 

인류 역사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를 이끌어온 종파

 

그것은 성경의 본래 면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누리기 위하여 예수를 죽이듯

 

기독교라는 제도를 통하여 권력과 부와 명예를 누리기 위하여

 

하나님을 감추고 예수를 왜곡하는 일을 계속해온 것이지요.

 

기독교라는 역사적 제도와 종파와

 

하나님과 예수가 깨달은 진리 자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달빛한의원 / 등록일 : 2010-04-19 17:20 / 수정일 : 2010-04-2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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